scar clinic

천연두

매우 전염성이 높은 질환으로, 원인이 되는 병원체는
폭스바이러스 그룹에 한 바이러스 중 하나

천연두의 증상

천연두의 증상은 여러 요인에 의해 증상과 경과에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전형적인 천연두는 2주 이내의 잠복기를 거친 후 갑자기 발열과 두통 및 요통이 발생합니다.
2일 후에는 붉은 색의 구진(피부 위로 약간 돌출되어 올라오는 피부병변)이 팔 또는 온 몸에 나타납니다.

수일 후 구진이 없어지고 작고 붉은 구진이 다시 발생하면서 얼굴부터 온몸으로 퍼지며 나타납니다.
붉은 구진은 2일 후 수포가 되면서 한가운데가 오목해집니다. 발병 1주 후에 수포는 농이 차는 농포로 바뀝니다.
이 무렵 합병증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경우는 약 30%의 치사율을 보입니다.
농포는 수일 후 딱지가 앉고 발열이 없어지면서 체온이 회복됩니다. 딱지가 떨어지면서 흉터가 남은 경우에는 특징적인 마마자국이 남습니다.

가두 또는 화두는 천연두에 대해 어느 정도의 면역성이 있는 사람이 감염된 가벼운 병형입니다.
경과가 가볍고 경미하게 끝납니다. 출혈성 두창은 가장 심한 형이며 치사율이 100%에 이릅니다.
감염되고 2-3일 째에 결막, 피부 등에 출혈이 발생하며 구강, 잇몸 및 기타 신체 내에 출혈을 일으킵니다. 5-7일 째에 사망합니다.

합병증은 대부분 피부 병변에 세균이 이차적으로 감염되어 발생하는 패혈증입니다. 폐렴, 후두염, 늑막염 그리고 농흉 등이 올 수 있습니다. 눈을 침범할 경우에는 결막염, 각막염, 홍채염 또는 안구 전체에 화농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적지 않은 환자에서 시야 장애와 실명이 발생합니다. 중이염, 신장염, 중추신경계 합병증 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사망률은 전체적으로 보아서 20-40% 정도입니다. 예방접종을 받은 사람에게 발생한 경우에는 예후가 훨씬 양호합니다.
치료는 특별한 약이 없으며 증상을 완화시킬 목적으로 치료합니다.

천연두는 전염성이 매우 높으므로 격리하여 치료합니다. 천연두의 전파는 점막 또는 병변 내에 있는 내용물을 통하여
사람과 사람 또는 사용하는 물품을 매개로 하여 호흡기, 소화기 및 피부의 상처 등을 통해 침입합니다.

천연두의 기원

약 200여년 전에 에드워드 제너는 실험을 통하여 천연두를 근절시킬 수 있는 기초를 확립하였습니다.
천연두는 가히 위력적으로 다른 질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류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쳐 왔었습니다.
천연두는 수 차례 세계적인 제국을 멸망케 하는데 기여하였고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을 뿐만아니라 심한 흉터를 남기고
시력을 잃게 만들었습니다.각 세대에 걸쳐서 이 질환을 최소화하고자 노력을 하여왔었으며 제너의 노력을 통하여 그 결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18세기 후반에 제너는 소유방을 통하여 감염된 우두를 앓았던 젖 짜는 여자들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으며 이를 과학적인 사실로 확립시켰습니다. 제너는 예방접종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아니었으나 예방접종이 천연두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신뢰할만한 기술임을 증명해 보인 첫번째 사람이었습니다.

천연두는 선사시대로부터 인류에게 가장 큰 재앙 중의 하나였습니다. 페스트, 콜레라 그리고 황열 등도 무서운 질환이지만
천연두와 같이 전세계적으로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였습니다.

천연두는 기원전 1만년 전 아프리카의 북동쪽에서 처음으로 농사를 위하여 인류가 정착할 무렵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원전 1000년 경 이집트 상인에 의하여 아프리카에서 인도로 전파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천연두는 기원전 1000년경에 중국에서도 이미 발생하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천연두로 생각되는 피부 병변을 보여주는 증거 중에 가장 이른 것은 이집트의 18-20대 왕조(기원전 1570-1085) 시대의 미이라의 얼굴과 기원전 1157년 젊은 나이에 죽은 람세스 5세의 잘 보존된 미이라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기록 중에 처음의 것은 기원전 1350년 이집트와 힛타이트 간의 전쟁 중에 유행한 것입니다. 이 질환은 이집트 죄수들에 의해
힛타이트 국민에게 전파되었으며 군인과 시민들이 모두 감염되었습니다.

힛타이트 왕인 수필룰리우마스 1세와 그의 후계 자인 마르루완다스도 희생되었으며 이후 이들의 문명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원전 430년에 아테네에서 유행하는 동안에 투시디드스는 천연두를 앓았으나 생존한 자는 나중에 천연두에 대해
면역을 갖는 것을 관찰하였습니다. 이러한 관찰은 서기 910년에 라제즈(860-932)가 다시 기록하였는데
이는 현재 남아 있는 천연두에 대한 첫번째 의학적 서술입니다.

라제즈는 천연두에 대하여 처음으로 정확히 기술하였던 사람으로 그의 기록은 매우 정확하여 현재까지도 거의 바꿀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라제즈는 또한 이 질환이 사람과 사람을 통하여 전파됨을 관찰하였습니다. 천연두의 생존자가 두 번 다시 이 질환에 걸리지 않는다는 그의 설명은 획득면역에 대한 최초의 이론이 되고 있습니다.

서기 302년에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시리아에서 유행한 것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레고리 어브 투어스는 서기 581년에 또 다른 기록을 남겨 두었습니다.
마리우스는 처음으로 서기 570년에 천연두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13세기에 앵글로놀만 사람인 길버트는 처음으로 천연두가 전염성 질환임을 추정하였으나 17세기에 사이드함이 이러한
의견을 부정하였습니다. 이 질환은 1614년 유럽에서 대유행을 하였고 1666년에서 1675년 동안에 영국에서 유행하였으며
17세기 중에 아메리카 식민지에서도 발생하였습니다.

제국의 멸망

천연두는 서구 문명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기 180년경에 로마제국의 쇠퇴 첫 시기는 천연두의 대유행의 시기와 일치합니다.
이로 인해 350-700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랍으로는 십자군에 의해 전파되었으며 서인도의 발견도 이 질환의 확산에 기여하였습니다.
신대륙으로는 스페인과 포루투칼 정복자에 의하여 전파되었습니다.
이는 해당 지역의 인구를 쇠약하게 하여 아즈텍과 잉카 제국을 멸망시키는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1518년 스페인이 멕시코에 처음 도착하였을 때에는 2500 만 명의 원주민이 있었으나 연속적인 대유행이 반복하여 발생한 결과 1620년에는 160만 명으로 감소하였습니다. 이와 비슷한 인구의 감소가 북아메리카의 동부해안에서도 발생하였습니다.
여기서도 천연두가 원주민을 재앙으로 몰고 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후 천연두는 유럽의 식민지 정책을 따라서 지속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천연두의 또 다른 악영향으로는 생물학적 전쟁에 이용된 예입니다.
1763년 북아메리카의 영국군의 참모총장인 제프레이 암헐스트가 헨리 보우켓 장군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천연두 농포의 딱지를 갈아서 담요에 묻힌 후 이를 비협조적인 인디안 부족들에게 보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열강들이 식민지에 있는 인디안들을 쫓아내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천연두를 전파시켜 이용한 것입니다.
워싱톤에서 나온 보고에 의하면 보스톤에서 미대륙 군대에 의해
포위된 영국군 이 포위를 뚫고 빠져 나오기 위하여 이 질환을 이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군 작전 중에 천연두가 이용됨에 따라 대부분의 미대륙 군대는
천연두에 대한 예방접종을 시행함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노예 매매도 천연두가 유행하고 있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온 많은 노예를 통하여
이 질환을 아메리카에 전파되도록 촉진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종두법 천연두의 발생에는 어떠한 구분도 없었습니다. 천연두는 모든 연령층과 사회경제계층을 감염시켰습니다.
감염된 경우 치사율은 20-60%로 다양하며 대부분의 생존자는 흉한 흉터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각막에 감염이 되어서 실명을 하였습니다.

천연두를 앓고 생존한 사람들이 이 질환에 대해 면역을 갖게 된다는 것은 그 당시에 상식이었습니다.
따라서 의사들과 일반 시민은 자연 발생하는 천연두보다 약하게 앓은 후 면역을 얻도록
의도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천연두균에 감염시켰습니다. 이러한 방법의 접종을 종두라 합니다.
천연두를 예방할 목적으로 시행하는 종두는 이미 18세기 이전부터 아시아 일부와 중국
그리고 아프리카 일부와 인도 등지에서 시행되어 왔었습니다.

종두는 약하게 질환을 앓는 사람들로부터 얻은 수포, 농, 또는 딱지를 분말로 만든 후
이를 다른 사람의 코나 피부를 통하여 주입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분말로 만든 천연두 농포의 딱지를 튜브를 통하여 건강한 사람의 콧구멍으로 불어넣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여러 형태의 종두가 시행되었으나 가장 흔한 방법으로는
천연두 환자에서 얻은 딱지나 농을 건강한 사람의 건강한 피부 또는 상처 낸 피부에 접촉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제너보다 100년 전에 건강한 사람에게 소의 벼룩으로 만든 환약을 복용시켰습니다.
또한 종두의 기술은 카라반 상인들에 의해서도 전파되었습니다.
종두는 오토만 제국에서는 1670년경에 무역상인에 의해 도입된 이후 자주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럽에서는 이스탄불에서 돌아온 무역상들이 도착하면서 18세기 초에 종두법이 알려졌습니다.
영국 학자인 메리 워틀리 몬태규 여사는 영국에 종두를 도입하였습니다.
여사는 1715년 천연두에 감염되어 아름답던 얼굴이 흉해졌으며 20세 된 동생을 천연두로 잃었습니다.
1717년, 몬태규 여사의 남편인 에드워드 워틀리 몬태규는 이스탄불의 대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여사는 이스탄불의 오토만 궁중에서 시행되는 종두 방법을 접하고 이를 전파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사는 1721년 4월 영국법정에서 자신의 가족에게 접종함으로써 접종의 안전성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여러 실험을 통하여 효과가 입증된 이후에 1722년 웨일즈의 공주의 두 딸에게 성공적으로 시행한 뒤
이 방법이 영국에서 일반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종두를 받은 사람 중 2-3%의 사람이 여러 이유로 사망하였습니다.

이 방법의 가장 중한 부작용은 천연두 자체가 발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율은 자연히 발생하는 천연두의 치사율에 비하면 10배 이상 낮았으므로
인공적인 접종이 제너의 발견으로 예방접종이 시행될 때까지 널리 시행되었습니다.
제너 자신도 8세에 종두를 받았습니다. 종두는 1721년 신대륙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미국의 보스톤 성직자인 코튼 마터는 자신의 노예가 소년기에 아프리카에 있을 때 종두를 받았던 실례를 통하여
종두가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천연두가 다시 보스톤에서 발생하였을 때
코튼 마터는 의사인 잡디엘 보일스톤을 설득하여 이 방법을 보스톤에서 천연두의 유행을 차단할 목적으로
시행함으로써 그의 노예로부터 얻었던 정보가 정확하였음을 재확인하였습니다.

1721년 6월, 보일스톤은 자신의 6세된 아들과 두 하인에게 접종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이 방법은 널리 확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753년부터 1754년 사이의 보스톤 대 유행 중에 벤쟈민 프랭클린은 종두의 효과를 평가하기 위한
윌리암 헤버든의 통계조사를 시행한 후에 이 방법의 가장 열렬한 신봉자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종두는 뉴잉글랜드의 식민지와 특히 필라델피아의 도시에서 널리 확산되었으며 18세기 후반에
인구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는데 기여하였습니다. 1766년 조지 워싱톤의 지휘하에 있는
미군은 천연두의 유행으로 건강한 군인의 수가 반으로 줄어서 영국으로부터 퀘벡을 탈취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에 영국군은 접종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천연두는 영국 제국 중 캐나다를 보존할 수 있었던 주요 원인 중의 하나였습니다.
1777년 여기에서 교훈을 얻은 워싱톤은 모든 군인들이 새로운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종두를 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탤리, 홀랜드 그리고 멕시코의 농촌에서는
젖 짜는 여인들 사이에 우두를 앓고 나면 천연두에 대해 면역을 갖는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제너가 1796년 한 소년에게 예방접종을 처음 시행하기 20여년 전인 1774년에
이미 돌셋 지방의 옛민스터에서 농부인 벤쟈민 제스티는 자신의 임신한 아내와 두 아들에게 종두를 시행하였습니다.
벤쟈민 자신은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이 질환에 대한 면역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 농촌 거주민 사이에는 사람에게 감염이 될 경우 비교적 약하게 앓고 지나가는 우두(소에서 발생하는 질병이며
증상은 천연두와 비슷하다)를 사람이 앓게 되면 치명률이 높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당시에 제스티는 두 명의 젖 짜는 여자를 고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여자들은 이전에 우두를 앓은 적이 있었으며
천연두가 유행하는 동안에 천연두 환자들을 직접 간호하여도 감염되지 않은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벤쟈민은 생각하기를 우연히 젖 짜는 여자들이 우두에 걸려 천연두에 대한 면역이 생겼다면 의도적으로
어떤 사람을 우두에 걸리도록 하면 이와 동일하게 면역성을 갖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자족에게 우두를 앓게 하여 면역을 얻도록 하고자 하였습니다.

다행히도 근처 농장에서 우두가 발생하였습니다. 벤쟈민은 즉시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가서
소의 유방에서 얻은 감염된 고름을 아내와 두 아들의 팔꿈치 바로 아래 부위의 팔에 접종시켰습니다.
수일 후 두 아들은 약하게 우두를 앓다가 회복되었으나 아내는 심하게 앓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그 아내는 결국 회복되었으나 이로 인하여 벤쟈민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1797 년 제스티 가족은 퓨어벡 어브 아일에 있는 월스 마트라버로 이주하였습니다.
이 지역에서 벤쟈민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접종을 시행하였으며 기록된 증거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이 전에도 다른 사람이 접종을 시행하였을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제스티는 접종을 통하여 우두를 유발시킨 것으로 알려진 첫번째 사람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에드워드 제너의 노력

에드워드 제너(1749-1823)는 목사인 스페픈 제너의 세 번째 자녀이였습니다.
13 세때 소드베리에서 저명한 외과의인 다니엘 루들로우의 견습생이 되었습니다.
이 당시 제너는 젖 짜는 여자가 "나는 결코 천연두에 걸리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우두를 앓았기 때문이죠.
나는 절대 보기 싫은 곰보자국이 얼굴에 발생하지 않을거예요"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21세에 제너는 런던에서 유명한 의사인 존 헌터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헌터로부터 제너는 외과적 기술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1773년 24세의 나이에 고향에 돌아와 개업하던 그는 농부들 사이에 널리 믿어지고 있던
우두에 걸린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788년에 제너는 일반인이 널리 믿고 있는 우두가 천연두를 보호하여 준다는 것이 사실임을 확신하였습니다.
이 무렵 제너는 이러한 가설을 우두의 병변에서 얻은 물질을 가지고 사람에게 접종함으로써
그의 가설을 검사할 계획을 세우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796년 5월 드디어 사라 넬메스라는 젖 짜는 여인에게서 소와 접촉을 통하여 우두가 발생하였습니다.
5월 14일 제너는 그 여자의 손에 있는 농포에서 체액을 채취하여 제임스 핍스라는 8세된 건강한 소년의 팔에 반인치 길이로
절개를 한 후 접종시켰습니다. 6주 후 제너는 그 소년에게 천연두를 앓고 있는 사람의 물집에서 내용물을 채취하여
팔에 접종을 하였으나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연두 환자의 다른 여러 분비물이나 화농물질을
이용하여 같은 과정을 수 개월 후에 다시 시행하였으며 같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1798년 인접한 지역에서 우두가 다시 발생함으로써 실험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1796년 제너는 왕립학회에 실험에 대한 논문을 보냈으나 왕립학회는 이를 게재하기를 거절하였으며
오히려 실험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중단할 것을 경고하였습니다.

이에 제너는 자신의 실험 결과 및 추가 실험결과를 보충하여 자비로 논문을 출판하였습니다.
제너의 출판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비호의적 이었으며 심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 의사를 통하여 접종이 시행되면서 그 효과가 입증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너는 우두를 앓은 사람에게는 천연두 또는 종두에 대해서 저항을 갖는 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전국적인 조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조사의 결과는 제너의 이론을 확증시켜 주었습니다. 제너의 업적으로 천연두의 예방에 천연두 바이러스를
직접 옮기는 인두접종법 대신에 병원성이 약한 우두접종법이 확립되었습니다.

예방접종 : 미국에서는 1800년 7월에 벤쟈민 워터하우스 하바드 의대 교수가 영국으로부터 백신을 얻어다가
자신의 네 자녀와 세 하인에게 접종한 후에 천연두의 감염에 대하여 면역성을 갖게 된 것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1802년에 그는 19명의 소년에게 예방접종을 시행한 후 4-5개월 뒤에 천연두 환자가 {{마마자국 없애기 }}가득 찬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증상이 있는 천연두 환자로부터 접촉시키고 균을 접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감염이 되지 않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예방접종의 효과를 확실하게 입증하였습니다. 이후 제너의 접종법이 대부분의 나라에서 일반적인 예방법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스페인의 챨스 5세 왕은 스페인에서 생산된 백신을 아메리카와 아시아로 보내어 1803-1806년에 걸쳐 처음으로
공식적인 대규모 예방접종을 외국에서 시행하였습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아메리카에서 인구를 감소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천연두라고 왕의 주치의가 선언할 정도였습니다. 당시에 인구가 준다는 것은 식민지와 무역을 통해서
스페인이 얻는 세금의 수입이 감소하는 것을 의미하며 적어도 이러한 경제적인 이유로 인하여 국비로 접종을 시행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너의 업적으로 인하여 1805년 나폴레옹은 자신의 군대와 1년 후에는 프랑스 시민을 대상으로 제너식의 예방접종을 시행하였습니다.

필자도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 뉴올리언즈에 있는 시립박물관에서 기록을 통하여 당시 전염병의 참상에 대하여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여름이 되면 수많은 모기와 불결한 환경에 의해 발생한 천연두, 콜레라, 황열 등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
특히 노예인 흑인들이 대량으로 목숨을 잃었으며 미처 치우지 못한 시체의 부패로 인하여 도시 전체에 악취가 진동하였다고 합니다.
백인들은 해마다 여름이 오면 무더운 날씨와 전염병을 피하여 뉴올리언즈를 떠나 다른 지역에 거주하였다가
여름이 지나면 다시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제너의 업적으로는 예방접종을 체계적으로 시행하여 감염 질환을 예방하고자 하는 첫번째의 과학적인 시도를 의미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예방접종을 발견한 것은 아니나 민간요법으로 시행되고 있었던 종두법을 과학적인 수준으로 향상시켜
증명한 첫번째 사람이며 결과적으로 인구의 감소가 중지되고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너는 예방접종에 대한 연구에서 이러한 과학적인 방법을 스승인 헌터로부터 훈련받았으며 그의 가설을 실험과
관찰의 수단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두가 소에서 사람으로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전파되는 것에 대한
실험은 매우 중요한데 이는 본래의 질환을 앓지 않고서라도 예방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에드워드 제너는 "천연두 예방접종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 후 200년이 채 못되어서 천연두의
극적인 종말을 소말리의 작은 마을인 머카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요리사인 알리 마오 말린은 1977년 10월 26일 특징적인
천연두의 발진이 발생하였으며 다른 사람과 직접적으로 접촉하여 발생한 천연두의 마지막 사람이 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지구상에서 천연두가 근절되었다는 선언이 1980년 5월 8일, 제 33차 세계보건기구 총회에서 천연두 근절을 인증하기 위한
세계위원회의 최종보고서가 채택됨으로써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천연두 박멸사업

1967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집중적인 천연두 근절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각국에서 추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박멸작업은 드디어 1977년 10월에 이르러 성공하였습니다.
이는 1979년 12월에 천연두 근절을 인증하기 위한 세계보건 기구의 세계 위원회에서 공인되었습니다.
이 보고는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으며 1980년 5월 8일에 제33차 세계보건총회는 공식적으로 이를 지지하였습니다.
천연두는 인류가 완전히 근절시킨 첫 번째의 주요 질환이며 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집중적인 천연두근절 프로그램은 1975년 10월 방글라데시와 1977년 10월 소말리아에서
마지막 환자의 발견을 끝으로 성공적으로 목적을 달성하였습니다. 따라서 10년간에 걸친 이 프로그램이 임무를 완수한 것입니다.
1979년 12월에 천연두 근절을 인증하기 위한 세계보건기구의 세계 위원회가 제네바에서 모임을 갖고 위원회 회원들이
최근에 천연두가 유행하였던 나라들과 특정 지역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찰한 보고서들과 모든 관련된 데이터들을 마지막으로 점검하였습니다.

모든 관련된 정보들을 신중하게 검토한 끝에 위원회는 천연두의 근절이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천연두가 유행성 질환으로 다시 나타날 증거가 없다고 최종 결론을 지었습니다. 적용된 기준은 적어도 2년간 개개의 나라에서
주의 깊은 활발한 감시가 있었고 적절한 검사실 소견에서 질병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위원회의 권고사항은
세계보건기구의 전체총회에서 세계보건기구의 집행부에서 더 고려하여야 할 것으로 의결되었습니다.

마침내 1980년 5월, 제33차 세계보건총회에서 천연두의 전세계적인 근절이 성취되었음이 선언되었습니다.
권고안에 따르면 예방접종 정책, 접종을 지속하도록 공급을 유지할 것, 향후 수년간 천연두로 의심되는 환자들을 보고하고 조사할 것,
다른 올소폭스 바이러스의 정체와 생물학적 특징을 연구하고 조사하는 것을 계속할 것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천연두 접종은 항상 어느 정도 합병증의 발생이 있으므로 더 이상 각 나라에서 일반국민에 대한 예방접종은 중단되었으며
특별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올소폭스 바이러스를 취급하는 근로자와 연구가를 제외하고는 모든 나라에서 천연두
예방접종을 중단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느 나라를 여행을 하더라도 더 이상 천연두에 대한
국제적인 예방접종 확인서를 요구하지 않도록 권고하였습니다.

1977년 10월에 마지막 환자가 발생한 이후 천연두가 참으로 근절되었고 계속되는 전파가 있다는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접종 균주는 무한정 유지될 전망입다. 세계보건기구는 두 나라에 2억 명의 사람에게 접종하기에
충분한 냉동건조 천연두백신을 냉동 보관하는 것과 동시에 유사시에 신속히 투여할 수 있도록 특수한 접종바늘의
공급을 계속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근절이 이루어졌음에 대한 인류의 확신을 유지시키기
위하여 천연두로 의심되는 어떠한 소문이 들리는 경우 세계보건기구는 어떠한 나라이더라도
신속히 조사하고 검사실 결과 및 임상연구가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다른 유사한 동물에 발생하는 천연두와 유사한 질환이 있기때문에 추후 연구를 위하여 최대 보안을 유지하는
여섯 곳의 연구실에 천연두 및 기타 다른 올소폭스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1977년만 하더라도 60여 개가 넘는 연구실이 이러한 바이러스들을 보유하고 있던 것에 비하여 대조적입니다.
천연두를 완전히 지구상에서 박멸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업적이라 하겠습니다.
한 질환이 완전히 근절되었으며 한 때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원인 병원체가 이제는 불과 몇 개의 매우 신중하게
선택된 실험실에만 국한되어 있게 된 것은 인류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1978년 버밍햄의 의과대학에서 천연두 바이러스를 부주의하게 취급한 의학사진가인 자넷파커가 감염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후에 의학미생물학 과장인 헨리 에스 베드슨교수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는 실험실에 보관되어 있는 천연두 바이러스를 매우 주의해서 취급하여야 함을 알려주는 사건이었습니다.

현재 천연두 바이러스의 모든 균주는
고도의 보안속에 조오지아의 아틀란타에 있는 질병관리센터(the Centers for Disease Control)와
모스크바의 바이러스준비협회(the Institute for Viral Preparations)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두 번에 걸쳐 영구 폐기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세계보건기구의 이사회의 구성원간에 이견으로 인하여 연기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 파기를 반대하는 두 가지 주요 이유로는 추후에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 첫 번째이며
두 곳의 천연두 바이러스를 파괴하는 것으로 천연두 바이러스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근절된다는 보장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 두번째 이유입니다 .

파괴를 주장하는 주요지는 실험실로부터 바이러스가 유출되는 경우에는 심각한 위험을 줄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천연두에 대하여 면역이 없는 전세계 인구가 증가하는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두번째는 바이러스의 여러 균주에서 완전한 게놈의 DNA 분획의 서열정보를 확인하고 이를 유용하게 활용함으로써
바이러스의 유전자와 단백질의 특성에 관한 수많은 과학적인 의문들을 해결하도록 남겨두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천연두 바이러스의 폐기에 대한 마지막 데드라인은 1999년 6월 31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미행정부는 1999년 4월 22일 천연두의 백신과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바이러스를 계속 보존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부 연구소는 천연두가 다시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보고하고 있으며 또한
생물학적 테러에 천연두 바이러스가 이용될 가능성도 알려져 있는 상황이므로 당분간 신속한 폐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 지구 어디에도 천연두가 전파되고 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세계보건기구는 1979년부터 1984년 사이에 천연두로 지목된 173예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였었습니다.

결국 이들 모두는 천연두가 아닌 수두 또는 다른 발진성 질환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천연두로 의심되는 경우는 공중보건에 있어서 응급상황이며 신속히 조사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천연두 예방접종은 국제여행에서 더 이상 요구되지 않고 있습니다.
1982년 1월, 국제보건협약은 규약으로부터 천연두를 제외시켰습니다. 예방접종에 대한 국제증명서에도
천연두 예방접종을 확인하여야 하는 요구가 없습니다. 일반시민에 대하여는 더 이상 천연두 접종을 시행하지 않습니다.
현재 천연두 예방접종은 직접적으로 천연두 (바리올라 바이러스) 또는
올소폭스 바이러스 (즉, 몽키폭스, 백시니아 등)와 밀접하게 연관된 작업을 하는 실험실 종사자에게만 시행하고 있습니다.
미국 군인들은 천연두에 대하여 의무적으로 예방접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종두 보급

한국에 천연두가 전파된 시기는 확실한 기록은 없으나 인도로부터 서역을 거쳐 중국에 전달된 기원전 2세기 말이나
서기 4세기 초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근대에 들어와
종두법이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이 천연두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내에 천연두 보급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약용과 지석영이 있습니다.

정약용(1762-1832)은 조선시대의 문신이며 실학자입니다. 정약용은 서양의 여러 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천연두를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하여 '마과회통' 이란 책을 펴내기도 하였습니다.

지석영(1855-1935)은 의사이자 국어학자입니다. 1876년 고종 13년에 수신사 김기수의 통역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박영선이 종두법을 배우고 '종두귀감'이라는 책을 갖고오자 이를 전해 받고 종두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879년 천연두가 만연하자 일본인이 운영하는 제생의원에서 종두법을 배우고 서울로 돌아오던 길에 처가에 들러
우리나라 최초로 종두법을 시행하였습니다. 1880년 수신사 김홍집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종두에 필요한 "두묘" 제조법 및
이와 관련된 지식을 배우고 귀국한 뒤 우두 보급에 힘을 썼으며 전주와 공주에 우두국을 설치하여 종두를 실시하고 종두법을 가르쳤습니다.
이후 우두관련 서적인 '우두신설'을 저술했으며 수년간 유배된 이후에 우두보영당을 설치하였고
위생국이 설치된 이후에는 이곳에서 종두를 관장하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움의 기준, 맑고 깨끗한 피부”
피부과 전문의 3인
아름다운 피부를 위해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